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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존 스톰보 C&MA 총재 블로그

2015.03.05 13:24

tsy 조회 수:247

죤 스텀보 총재의 2 월 메세지

  동역자 여러분! 오늘 다시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제게 답변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문지에 나온 질문을 통해 응답하였든지 혹은 이미 촬영했던 비디오 블로그 전 편에서 제가 여러분과 대면했을 때 응답을 주셨든지 저는 답변을 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일월(January)의 비디오 블로그는 여러시청하신 분들로부터 매우 열띤 반응을 끌어내었습니다. 저는 여러 시청자들이 반응한 몇 가지 것들을 매우 관심 있게 보았는데 그것을 좀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여러분이 종종 그랬던 것처럼 제 주장을 긍정하며 제 신념을 더욱 공고하게 해 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현 시대에 적절하고 위대하며 거룩하고 희망이 넘치게 하는 생각이다라고 응답하신 분도 있습니다.  다른 어떤 분은 권력 남용에 대하여 당신이 한 말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아내와 아이들을 인도하려는 내 자신의 방식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정통으로 한 대 맞았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 당신 말을 들을 때 당신이 무슨 손해나 위험을 당할 수 있는 그런) 문제를 말하셨지만 꼭 말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과감하게 언급하신 용기와 지혜 그리고 사려 깊게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라고 응답하신 분도 있습니다.   저는 가족 같은 친구들에게 또는Facebook을 통하여 또 다른 곳에서 이런 시청자의 반응을 두루두루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하여 총회 본부 안에 어떤 분일지라도 이렇게 격려하는 응답을 받으면 감사하게 됩니다.  저는 또한 어떤 반응이 설령 저를 반대하는 내용이라 해도 피차에 오고 가는 반응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반응의 글입니다. “총재님 당신은 결국 예수님은 세상에 정의와 평등을 가져오기 위해 오셨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저는 당신(총재님)이 좀 과장하고 있다 느낍니다, 제가 믿기로는 예수님이 세상에 화해함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화해의 열매가 바로 정의, 평등, 자유 등등인 것이지요.”  이것은 제가 말하려 했던 요점을 가장 잘 설명해 준 응답이었습니다.  이 응답을 주신 분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어떤 분은 친절하면서 솔직한 응답을 남기신 분도 있습니다.  내 의견에 이 블로그는 도움이 안됩니다.”  어떤 분은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멧세지에는 인본주의적 내용과 그 강조점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당신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은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심지어 내가 아는 몇몇 자유주의적인 모슬렘 교인들에서도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제가(총재) 희망하기로는 사실 저는 인본주의적 멧세지를 넘어서 더 많은 것을 말하기를 희망했었습니다.  나의 말이 (이 댓 글을 내게 남긴) 당신에게 그렇게 들여졌다는 사실을 제가 듣는 것도 제게는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도 감사합니다.

    어떤 응답에는 마치 제가 침에 쏘였다는 느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댓글도 있습니다. “당신 말이야 마치 예언자처럼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데 당신 여자들을 혹하게 만드는 그런 남자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저는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성경 안에 아가서와 잠언 둘 다 있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나머지 다른 반쪽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지난 달 비디오 블로그에 대한 이러한 반응들 때문에 이번 달에는 권세라는 주제를 좀 깊이 다루고 싶습니다. 제가 이제부터 심각하게 말하게 될 이것은 과거에 말이나 글로 이미 발표했던 것이 아니라 최근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느낀 생각입니다.  제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신약 성경을 통하여 내 마음에 몇몇 새로운 생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눅 18-19 장을 통하여 몇 가지 그 생각을 나누기 원합니다.  지금 이 비디오를 볼 때에 여러 분이 성경 본문을 실제로 다시 생각해 보신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18 장은 불의한 재판장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는 기자인 누가가 이 이야기가 다 이야기 중에 처음 이야기가 되도록 그렇게 의도적으로 쓴 것입니다.  누가는 성령님의 감동 아래 그 다섯 가지 이야기 각각을 통하여 잘못 사용된 권세의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 함께 그 이야기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18 장에서

첫번째 이야기 입니다.불의한 재판장은 자기를 찾아온 한 여인을 위해 정의를 실행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 지위의 권세를 자신을 안락하게 하는 데에만 사용하다가 그 여인이 자기를 너무 귀찮게 해서 참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서 그 권세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 그가 가진 권세는 힘없는 여인을 보호해야 할 정의를 오히려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바리새인의 이야기입니다.  바리새인이란 계급은 종교적인 권세 영적인 권위를 가진 자입니다.  슬프게도 본문에 소개되는 이 바리새인은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자랑하는 종교적인 행위는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필요를 전혀 못 느끼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함으로 그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구원까지 막습니다.  마태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지적하였습니다 너희 율법사들아 너희 서기관들 과 바리새인들아 너희는 교인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구원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자기의 자녀들을 예수님에게 데려오기를 원하는 부모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자들을 그것을 막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제자들이 바로 권세를 휘두르는 자입니다.  이것은 어떤 구룹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권력의 횡포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만든 권세로 부모와 그들의 자녀들을 꾸짖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라기보다 예수님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믿기로는 복음서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군중을 다스리라고 요청하셨음을 증거하는 어떤 성경 구절도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젊은 관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 사람이 복음서를 기록하였지만 불의한 재판관과 기도하는 바리새인, 그리고 이 젊은 부자는 관리였다 라고 소개한 사람은 오직 누가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좀 흥미롭습니다.  이 부자는 부의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들을 오늘날 우리가 말한다면 어린이들이 예수님에게 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벌어지는 메인 스트리트에서 우리는 이제 월 스트리트로 옮긴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의 이야기는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미 누리고 있는 부의 권세로부터 멀어지지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구원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18 장은 맹인 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서 5 가지 중 마지막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다수의 군중이 합세하여 권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다수의 파워입니다.  예수님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이 맹인을 모인 사람들이 다수의 힘으로 중단시키려 합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여기서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제가 이 맹인에 대하여 더 말하게 되면 여러분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여기에 할해한다 라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더 하겠습니다.) 여리고는 해저700ft아래에 위치한 낮은 도시입니다.  아마 그 때는 매우 더웠을 것입니다.  한 무리들이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길거리로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군중들은 그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 길을 빨리 빠져나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주의를 끌려는 이 맹인 거지가 그 일을 중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은 군중들이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고 또한 이들의 관심은 주님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이 사람을 중단시키겠다는 것 외에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들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면서그에게 조용하시오.” 라고 말하였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어린이들과 그들을 주께로 데려오려는 부모를 꾸짖은 것처럼 이제는 사람들의 무리가 그 맹인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한번 더 맹인이 주님께 접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보게 되면 권세 있는 어떤 자가 가진 권세를 부정적으로 사용하여 어떤 다른 사람을 막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가진 권세가 오히려 자기 자신을 막는데 사용되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런데 또 흥미로운 사실은 복음서에는 기록한 사람들 중에 오직 누가 만이 세금을 징수하는 권세를 삭개오가 예수님을 즉시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보면 삭개오는 그가 가진 권세를 오용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스스로 겸손하여 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봅니다.  이전에 그는 권력을 오용했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를 희생합니다. 

그리고 재산의 상당한 부분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는 그의 가정을 구세주에게 열었고 마음 문도 열어 구원을 받습니다. 권세를 부리는 자들의 다섯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눅18-19 장을 누가는 긍정적인 삭개오의 이야기로 마칩니다.

    물론 이 성경 본문에는 다른 많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설교자신데 이 구절들을 통하여 다른 많은 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이 이야기들을 통해 기도 주제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관심 어린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약속과 기도의 원칙이 이 두 장에 나타나지만 저는 그 모든 것을 일일이 다 말할 충분한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보기를 원했던 것은 권세를 사용함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인데 누가는 그것을 눅 18-19 장을 통해 마치 천을 짜듯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7 25절에는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당할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당하고 그 세대의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야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18:32 절에서 예수님은 이방인에게 넘겨질 것이고 그들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며 침을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9 장에 가서는 예수님이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승리의 입성으로 연결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예수님이 자기의 권세를 오용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권리와 권위를 내려놓고 사람들은 구원하고 세우고 축복하고 치료하고 용기를 주는데 항상 그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한 시간이 걸려서 할 세미나의 내용을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마치게 된 점을 여러분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바라건대 우리 가운데 몇 사람들이 이 성경 본문을 좀 더 공부하시고 깊이 생각해서 우리가 가진 권세를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발견해 주셨으면 합니다.   

 얼라이언스 교단 가족들 여러분! 우리들은 이런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 권세를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또는 목회적으로 스스로 이런 함정에 우리 자신이 빠진 것은 아닌가?  물어야 합니다.  

지난 달 저는 두려움에 대해 말했는데 권력의 오용이 종종 우리가 두려움을 느낄 때 그것과 연결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본성이 우리가 권력의 오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만든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몇몇 일들을 말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듣기 원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없는가?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은 그냥 옆으로 밀어 놓아 버립니다.  우리는 그 직책을 잃어버리면 바로 자신이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해서 무엇인가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이 목회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권리가 없는데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자신이 어떤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등등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저도 지난 몇 년간 제가 저지른 악한 경우들을 고백합니다. 내가 이것은 당연히 받아야 할 내 권리야 라고 느꼈던 순간 참지 못하고 급하게 반응한 나의 잘못된 매너에 대해서 죄를 고백합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그 때 그 순간 나의 찌그러진 그 모습을 용서하여 주소서.  우리의 삶이란 어린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신적인 권위와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을 받으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면서도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섬기는 데 자신의 능력이 있음에도 자기 자신을 섬기는 데는 그가 가진 능력을 결코 드러내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을 축복하고 능력을 주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항상 그의 능력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따르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Transcript

Hey, team, great to be back with you today. I so much appreciate those who interact by way of the survey questions or when I see you face to face on the previous video blogs. And on the particular one from January, I got some fascinating feedback that I wanted to read some of it back to you.

Some of it was affirming as you often are to me. One person stating, “Thanks for a great, godly reflection pertinent to our time, filled with hope.” Another person, “Your comments about power abuse convict me even in the way I try to lead my wife and children sometimes. Wow direct hit! Thanks.” Somebody else said, “Thank you for being courageous to address what needed to be addressed, for wisdom and thoughtfulness and vulnerability. I have shared it broadly with family friends or Facebook and elsewhere.”

So, as any of us, we’re grateful to get some encouraging feedback. I’m also grateful to get the interactive kind of feedback that grapples with what has been said. For example: “Toward the end, you made a statement that said ‘Jesus came to bring justice, equality.’ I felt this was a bit of an overstatement. I believe He came to grant reconciliation; the fruit of that reconciliation is justice, equality, freedom, etc.” A great improvement in what I was trying to say. Thank you for that feedback.

And the kindly spoken, honest feedback that says, “This blog was not helpful, in my opinion.” Or, “I cannot but hear the humanist tone and emphasis in your message. Indeed, the heart of what you said could be and has been said by kind, secular folks, even by some liberal Muslims that I know.”

I was hoping I said more than just a humanistic message, but if that’s what you heard, it’s helpful for me to hear what you heard. So, thank you for that. 

I couldn’t however help but feel a bit of a sting as someone wrote, “You are seriously quoting, as a prophetic voice, a womanizer?” Can I gently respond by asking, do you still have Song of Solomon, Proverbs, and half of The Psalms in your Bible?

Because of the kinds of feedback that I received from last month’s video blog, I am using this month’s blog to talk further on the subject of power. Not a subject that I have ever written on or addressed in the past to any significant degree, but in my own devotional reading these days, it seems like the New Testament has been being used by the Spirit of God to reveal some new thoughts to my heart. And so, I want to share some of those with you today, taking us to Luke 18 and 19. It would be helpful for this blog if you would actually review that passage as you watch this video.

.

Luke 18 starts with the story of the unjust judge. It’s actually the first of five stories that are put side by side by the author—Luke, under the inspiration of the Holy Spirit—that each of them have a position of power in these stories, power that is misused. Follow me with this outline that I am walking through.

The unjust judge in Luke 18 is not interested in giving justice to this woman who’s coming to him. He’s using the power of his position in a manner of self-preservation. He has no interest in justice or in a fear of God or in her needs, but he is very interested in his own self. He is using the power of his position for self-preservation until she finally wears him down. But in the meantime, he’s blocking justice for this defenseless woman.

The second story is a story of this Pharisee who goes to pray. Pharisees had the power of religion, spiritual authority, and sadly throughout this story, this Pharisee is guilty of self-admiration, where he is so impressed by his own religious activity that he really doesn’t feel himself in need of salvation. And in so doing, the Pharisees at that time actually blocked salvation for others. Jesus had said it in Matthew, “That you teachers of the law, you scribes, you Pharisees, you travel over land and sea to win a convert and make them twice as much a son of hell as you are.” Wow! They were blocking salvation.

Third story is the story of the parents that were wanting to bring their children to Jesus to be blessed, but the disciples get in the way. The disciples are the ones who exert power in this story—the power of being an insider. They were Christ’s representatives and, as insiders, were now using that self-appointed power to rebuke the children and the parents and become Jesus’ handler. I don’t think there is any place in the gospels that would indicate that Jesus asked the disciples to handle the crowds on his behalf. In doing so, they were blocking the defenseless children from coming to Jesus. 

The rich ruler is the next story. It’s interesting that Luke is the only one to tell us the story of the unjust judge and the praying Pharisee, and Luke is the only one to tell us that this wealthy guy was a ruler. It’s inserting a statement of power into this story. This ruler, this wealthy man has the power of wealth.   We have gone from Main Street in the disciple’s story of blocking the children to Wall Street, now, the story of this wealthy man who is self-sufficient. He blocks himself from salvation because he’s not willing to walk away from the power of wealth that he already has, so he actually blocks himself.

Luke 18 concludes with the story that we refer to as the story of the blind beggar. But in this story, the crowd actually exerts power—the power of numbers, where, together, they try to stop this man from getting Jesus’ attention. I think that there is a bit a self-serving that’s going on here

You may think I’m reading too much into the story, but Jericho, being at a very low elevation—700 and some feet below sea level—it is probably very hot at this moment. A crowd is coming through a busy street. This man is trying to stop the whole thing and get Jesus’ attention, and they want this crowd to keep moving. They don’t want to . . . they have no interest in stopping for this guy that wants Jesus’ attention. So, “Those who led the way”—another power word—“Those who led the way rebuked him and told him to be quiet.” Just as the disciples had rebuked the children and the parents, the crowd rebukes the blind man. And in so doing, once again, a disabled person is blocked from having access.

Isn’t it interesting that stories side by side have somebody in power, using their power in negative ways to block somebody else or sometimes themselves from a positive use of that power? I’m intrigued, then, that Luke is the only gospel author to tell us the story of Zacchaeus that immediately follows, because Zacchaeus has power—the power of the system as a tax collector—but he doesn’t misuse his power in this story. Instead, he’s self-humbling, climbing a tree so he can see Jesus. He’s self-denying and self-sacrificing, offering up a significant portion of his wealth, if he has misused his power in any way, and opens the door of his home to the Savior and opens the door of his heart to salvation. So Luke closes with a positive example, this section on those who have power in their positons.

There are many other things that we could do with this passage, and many of you are preachers, and so you’ll do many other things with this passage. I’m intrigued to find out that there is also a theme of prayer running throughout all these. Often there is a promise and a principle, and I don’t have time to go all those places today. Where I do want to go though is that Luke interweaves the idea of Christ’s use of power in this section as well.

Chapter 17, verse 25, Jesus says about Himself, “. . . he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is generation.” Chapter 18, verse 32, “He will be handed over to the Gentiles. They will mock him, insult him, spit on him, flog him and kill him.” And in Chapter 19, leads the story of the triumphal entry, where Jesus rides into Jerusalem on a colt. The One who could have exerted all power for self-preservation, self-serving kind of ways, He did not misuse His power but laid down His rights and authority and used His power in a manner that built people, blessed others, healed, strengthened, brought salvation.

So I confess that I have given us an hour seminar in way too short a time, hoping that some of us will continue to study these passages and think more deeply about the use of power in our own lives.

  Alliance family, I have to ask us: have we fallen into this trap personally or as a broader ministry of a misuse of power? If we combine it with fear, as I said last month, it’ll always be a misuse of power.   But it’s also human nature for us to be blind to a misuse of power, and so, are there voices of people around us who’ve been trying to say some things to us that we’ve not wanted to hear? We have pushed them aside. Have we so closely identified our own person with our position that we are afraid to give something up or release somebody or launch them into ministry? Are we having any sense of entitlement?

Oh, I confess to some of my own worse moments in recent years have been when, in an impatient kind of manner, I have felt like I deserved—I had the right. Oh God, forgive me for my ugliness at that point in time. We follow the Christ who rode into Jerusalem on a colt—knowing full well His divine authority and power, knowing full well that He was loved by the Father, He could humble himself, not need to express His power in any self-serving way but always in ways that blessed, strengthened, and brought salvation. That’s the Christ we follow. May that be the kind of people we would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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